단번에 드리신 사랑, 다시 오실 소망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시간을 걸으며 우리는 십자가를 더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 십자가는 단지 예수님의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번에 드려진 속죄의 제사이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믿음의 정거장입니다.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9장 28절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의 단번에 드리신 제사와 그로 인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확신,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는 삶에 대해 함께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단번에 드리신 제사, 반복되지 않는 십자가 (히브리서 9:28)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이 짧은 구절 안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는 반복이었습니다. 매년, 매절기, 매번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피가 흘러야만 죄가 덮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반복의 굴레를 끝내셨습니다. 단 한 번의 제사로 모든 죄를 속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반복이 필요 없는 완전한 속죄였습니다. 십자가는 일회적이지만 영원한 능력을 지닌 사건이었고, 그 위에 흘린 보혈은 모든 세대의 죄를 사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단번에 드리신 제사 앞에서 더 이상의 의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피 흘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는 우리의 묵상은 이 ‘단번에’라는 한 단어에 오래 머물러야 합니다. 이 단번의 은혜는 반복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이며,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속계획의 성취입니다. 그분은 두 번 죽으시지 않습니다. 첫 번째 죽음이 완전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신 사랑 (히브리서 9:28)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이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입니다. '많은 사람'은 단지 수적 개념이 아니라, 대표성과 보편성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의 어깨 위에는 온 인류의 죄악이 실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나의 죄도 짊어지셨습니다. 이 '많은 사람' 속에 '나'가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흘린 피의 대가 안에 포함된 존재입니다. 이 사랑은 전체를 위한 사랑이자,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우주적인 사건이면서도, 내 인생을 바꾼 가장 사적인 만남입니다.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는 이 무게를 느껴야 합니다. 그분이 담당하신 죄,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됩니다.
죄와 상관없이 나타나실 그 날 (히브리서 9:28)
히브리서 기자는 이어서 말합니다.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 구절은 너무나도 희망적인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재림은 다시 죄를 속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죄의 문제는 이미 단번에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오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심판자이자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눈은 자기를 바라는 자를 향해 있습니다. 다시 오실 그리스도는 기다리는 자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는 죄인이 아니라, 구원을 갈망하는 자들을 위해 오십니다.
고난주간은 이 기다림의 정서를 다시 일깨우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단지 과거의 고난을 회상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기다림 속에 우리의 소망이 있고, 우리의 경건이 자라며, 우리의 신앙이 깊어집니다.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신앙의 중심 (히브리서 9:28)
히브리서 9장 28절의 마지막 표현은 매우 시적이면서도 도전적입니다.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여기서 ‘바라다’라는 말은 단순한 기대가 아닙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이며, 영혼의 초점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는 사람은 그분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지 고난주간은 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일시적인 위로와, 잠깐의 안락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 기다림이 깨어 있음으로 드러나고, 경건함으로 이어지고, 말씀과 기도로 살아나는 사람에게 주님은 반드시 임하십니다. 고난주간은 바로 이 기다림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바라는 자의 삶은 준비된 삶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위해 조용히 심령을 정결케 하고, 마음의 등불을 밝히는 시간입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히브리서 9장 28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고난주간의 깊은 의미를 되새겼습니다. 단번에 드리신 제사,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하신 사랑, 죄와 상관없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 그리고 자기를 바라는 자에게 향하신 그 시선.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바로 구속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회적인 사건이지만, 그 영향력은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있습니다. 고난주간은 단지 지나간 이야기를 기념하는 주간이 아니라, 지금도 나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사랑 앞에 무릎 꿇는 시간입니다.
오늘 그 사랑 앞에 머무르십시오. 단번에 드려진 그 피 앞에 다시 서십시오. 자기를 바라는 자로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준비하는 성도로 이 한 주를 걸어가십시오. 주님의 단번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고, 그분의 다시 오심은 곧 우리를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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