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을 지나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십자가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원의 심장에서 이미 흐르고 있었던 하나님의 뜻이며, 하늘로부터 시작된 순종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6장 38절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지, 그 오심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구속사의 흐름 속에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6:38)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그 발걸음의 기원 (요한복음 6:38)
예수님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오심의 시작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주님의 말씀을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출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과 목적의 선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는 것은 곧 하늘의 질서와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형상 안에 담겨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어 오셨지만, 그 존재는 온전히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두 세계의 연결이 바로 구속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예수님의 오심으로 만난 것입니다.
여러분, 그 발걸음은 거룩한 단절이었습니다. 영원에서 시간으로, 신성에서 육체로, 천상의 영광에서 인간의 고통으로의 이행이었습니다. 이 하강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리를 비우는 희생이었고, 자신을 낮추는 결단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은 이 하강의 여정을 되짚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따라 (요한복음 6:38)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예수님의 이 말은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예수님조차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아의 주도권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인간적 감정과 고뇌가 있었음을 우리는 겟세마네에서 보게 됩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그분은 고통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마태복음 26:39).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6장 38절의 진의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전면적으로 수용하셨습니다. 이 수용은 마지못한 복종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난 신적 순종이었습니다. 그의 뜻보다 위대한 것은 아버지의 뜻이었고, 그분은 그 뜻에 자신을 온전히 묶으셨습니다.
보내심을 따라 사는 존재, 그 본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6:38)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보냄 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철저히 보내심에 대한 인식 속에서 사셨고, 모든 사역의 시작과 끝을 아버지의 뜻에 두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그의 출신만이 아니라, 그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을 설명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를 보내는 자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뜻, 내 계획, 내 비전으로 가득 찬 삶.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히 ‘보냄 받은 자’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같은 본을 남기셨습니다. 제자는 스스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보내심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이 보내심의 순종이 어떻게 구속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분의 보내심은 단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의 실현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은 보내심의 길을 다시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뜻을 따라 살고 있습니까?
하늘 뜻에 묶인 사람, 십자가에 이르다 (요한복음 6:38)
예수님은 하늘의 뜻을 따라 걸으셨고, 그 뜻의 정점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지 로마의 형틀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묶인 순종의 끝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기까지 한 걸음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의 완성이며, 순종의 결정체입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선택하셨고,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죽음은 인간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땅에 도달한 사건이었습니다.
고난주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 하늘 뜻에 묶인 예수님의 걸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의 길은 외롭고 고통스러웠지만, 그 길 끝에는 부활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묶인 사람은 결국 생명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은 다시 다른 이들을 살리는 복음의 씨앗이 됩니다.
마무리 묵상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 6장 38절을 붙들고 고난주간의 깊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신 그분, 보내심의 사명을 따라 십자가까지 걸어가신 그 사랑의 발걸음을 우리는 묵상했습니다.
고난주간은 단순히 예수님의 고통을 감상적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따라 걸어가고 있습니까? 내 뜻을 내려놓고 주의 뜻에 순종하려는 몸부림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6:38). 오늘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며, 우리도 그분처럼 살아내기를 결단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삶 또한 구속의 이야기 안에 묶여, 또 하나의 복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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