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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모음

고난주간 묵상,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by biblia66 2025.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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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주간의 중심에 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이 한 주간은 단순한 종교적 절기가 아니라, 우리 구원의 심장을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붙잡고, 그분의 상처에서 피어오른 구속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허물로 인한 찔림, 하나님의 거룩한 침묵 (이사야 53:5)

여러분,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면서 '찔림'이라는 강렬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것은 단지 상처 입는 정도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깊은 파열을 의미합니다. 그 찔림은 로마 병정들의 창 끝에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허물, 즉 우리가 고의로 저지른 죄와 하나님 앞에서의 비틀어진 선택들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숨겨진 허물,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생생히 보이는 그 모든 부패함들이 예수님을 찔렀습니다. 이 찔림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침묵은 심판의 유보이자, 사랑의 확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몸에 인간의 허물을 짊어지게 하시고, 그 위에 징계를 내리셨습니다.

이 침묵은 무관심의 침묵이 아닙니다. 그것은 천상의 법정이 인간의 죄를 처리하는 방식이었고,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그 법정에 서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그는 한 치의 변명도 없이 찔리셨습니다. 여러분, 이 찔림의 깊이를 오늘 깊이 느껴보십시오.

상함 속에 감춰진 자발적 순복 (이사야 53:5)

‘상함’이라는 단어는 마치 뼛속까지 갈라지는 통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무너짐의 극치를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누군가 억지로 예수님을 끌고 간 고통의 장소가 아니라, 그분 스스로 걸어 들어가신 하나님의 무대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능히 자신을 구할 수 있었고, 천사의 군대를 부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요히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 상함은 피할 수 없는 재난이 아니라, 받아들이신 운명이었습니다. 그분의 찢김 속에는 하나님의 순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우리를 위해 자기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상하심으로 우리는 치유받습니다. 그 상함은 단지 육체의 붕괴가 아니라, 죄로 인한 단절의 중재였고, 절망의 해방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상함 앞에 서는 순간, 그분의 고통은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를 다시 일으키는 능력이 됩니다.

징계 속에 드러난 하늘의 평화 (이사야 53:5)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라는 구절은 너무도 역설적입니다. 보통 징계는 죄지은 자가 받습니다. 그러나 죄 없는 분이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인 우리가 평화를 누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징계는 고통입니다. 징계는 단절입니다. 그러나 그 징계는 예수님을 찢었고, 그 찢김 사이로 하늘의 평화가 흘러들어왔습니다. 죄의 구조가 무너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징계를 통해 하나님과 다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안락함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이는 영혼의 중심이 다시 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평화를 위한 길이었습니다. 그 징계를 통해, 우리는 다시 숨 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채찍 속에 흐르는 생명의 선율 (이사야 53:5)

채찍은 단지 육체의 고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의 대가를 상징하는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신 그 순간, 우리는 치유의 선율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채찍의 자국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새겨졌고, 그 고통의 선율 위에 생명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이 얼마나 황홀하고도 비통한 고백입니까? 예수님은 육체가 찢기셨지만, 우리 영혼은 이어졌습니다. 그는 쓰러지셨지만, 우리는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상처는 우리의 회복의 문입니다. 우리는 그 채찍 속에서 하나님의 정직한 사랑을 보고, 거룩한 치유의 능력을 만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고난은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이고, 오늘 우리 삶 가운데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 채찍은 그저 한 시대의 고통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꿰뚫는 구속의 선율입니다.

마무리 묵상

오늘 우리는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붙잡고, 고난주간의 중심으로 들어왔습니다. 찔림과 상함, 징계와 채찍, 이 네 단어 안에 복음의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분의 아픔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분의 상처는 우리의 회복을 위함이었습니다.

이 고난주간, 우리는 예수님의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그 걸음은 피 묻은 길이었고, 외로움의 길이었으며,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영광은 고난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주님 앞에 조용히 마음을 내어드립시다. 그분의 찔림 앞에 우리 허물을 내려놓고, 그분의 상함 앞에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그분의 징계 속에 다시 평화를 갈망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채찍 속에서, 우리가 진정한 나음을 입었음을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주님은 찔리셨고, 우리는 살아났습니다. 주님은 상하셨고, 우리는 회복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역전의 복음 앞에 오늘도 감사로 무릎 꿇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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